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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장로

효선농산의 창업자

김영원장로는 1931년 경북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서 1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병약한 아버님을 도와서 농사일과 집안 일을 거들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학업을 접고 농사를 지었다.

5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33세 때 장로가 되어 1969-1985년까지 16년 동안 목회자 없는 고향의 교회에서 설교를 해왔다.

1978년 김영원장로는 과수원 농약살포 도중 농약에 중독 되어 쓰러진다.
농약 중독 사건은 농업의 철학을 세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김영원 장로는 “그 때 돈을 버는 것보다 생명이 소중하고, 내 자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작물도,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김영원 장로는 그 뒤 자연스럽게 농민 운동, 민주화 운동, 유기 농업 운동, 환경 운동에 참여한다.

김영원 장로는 그 뒤 자연스럽게 농민 운동, 민주화 운동, 유기 농업 운동, 환경 운동에 참여한다.
한국기독교 농민회 전국회장, 유기농업실천협의회 전국회장 정농회 이사, 우리농산물 먹기운동 공동의장, 기독교 사회운동연합 공동의장, 낙동강살리기 운동 공동의장 등을 거치면서 수백회의 강연과 유기농업 철학 전파에 전념하게 된다. 그를 일컬어 유기농업 운동의 1세대라고 할 만하다.
그는 지금도(2005년) 파킨슨병에 힘든 몸을 가누고서 번역에 몰두하며 청탁받은 논문을 작성한다.
많은 유기농 운동가들은 노구에 투병을 하면서도 생명 농업 운동을 활발히 펼쳐가는 그를 한국 유기 농업의 대부로 여긴다.

지금은 그의 자식(효선농산대표 김정욱)도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농사도 유기농법으로 짓고 지역의 농민 운동과 환경 운동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김영원 장로는 유기농업으로 시작할 초기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고 말한다.
“발에 밟히는 건 낙과들이요, 그나마 앙상한 가지에 마치 탱자처럼 매달린 사과는 심식충에 의한 피해로 스펀지 같고 9월이 되면 내년 봄에 피어야 할 꽃이 벌써 다 피어나니 집사람은 아예 밭으로 가지 않으려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3~4년은 아무것도 거둘 수 없었습니다.”

마냥 포기할 수 없어서 농약을 살포하는 대신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미생물, 초목회, 막걸리, 식초, 마늘즙액, 목초액, 흙설탕 발효액등 갖가지 민간농법이 총동원하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과일과 농산물은 겉모양에서 보잘 것 없어 시중 출하가 어려웠다. 누가 벌레먹은 배추를 사겠는가? 생산된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식품을 생각하게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야채효소를 제품화 하게 된다.

“이제 이십 몇년간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선택을 잘 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14대를 이어서 전통 농법을 고집하는 보기 드문 농가를 이루었다.
김영원은 효선농산의 실질적인 창업자이다.